화랑세기 위작설, 다시 말해 화랑세기가 박창화가 지은 역사소설이라는 주장을 펼친 박남수씨의 '신발견 박창화 화랑세기 잔본과 향가 1수'라는 논문을 구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일단 대체로 화랑세기 필사본이 필사되었던, 집필되었던 쓰여진 시기는 1930년대 중반의 어느 순간이라는데 대부분 이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필사본'이 쓰인 용지가 당시 그가 촉탁받아 근무했던 궁내성 도서료 혹은 서릉부에서 쓰인 용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기 전에 1930년에 화랑세기에 대한 설정과 습작을 했고, 그것이 바로 이 화랑세기 잔본이라는 게 박남수씨의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화랑세기 잔본에는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고 해서, 경오년(庚午, 1930)이라고 연도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1930년에 제책된 자료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용지는 실록편찬용지(實錄編纂用紙)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종욱 교수에 따르면, 이것은 다이쇼(大正) 일왕의 실록을 편찬하기 위한 용지라고 하네요.
찾아보니, 다이쇼 일왕은 1926년에 죽었고, 1927년에 편찬에 착수, 1937년에 실록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화랑세기 잔본도 1927년부터 1937년, 아니 그 이후의 시기까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남는 종이를 가져다 쓰면 되니까요~

여기서 의문점이 드는 것은 바로 1930년이라는 연도라고 콕 찝어 말할수 있는가? 입니다.

논문에서는 또 다른 원고본 '國罡上王記'의 예를 참고로 표지에 기록된 '상장돈장(1930년 경오년)'을 제책시기로 추정하였고 합니다. 하지만 국강상왕기에는 '著擁執徐秋在江戶抄而未考者久至」柔兆涒灘至月改衣’라고 하여, 1928년(무진)에 일본에서 초(抄)하고, 살피지 못하다가 1956년(병신)11월에 표지를 바꾸었다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랑세기 잔본의 표지에는 제목도 없고 그저 딸랑 '상장돈장'만 기록되어 있다고, 자신의 논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장돈장이 가리키는 1930년이라는 연도가 작업(필사든, 집필이든)을 시작한 시기인지, 완료한 시기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박남수씨는 '국강상왕기'의 예를 들어, 과감히 화랑세기 잔본의 제책시기를 1930년으로 비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문소설' 화랑세기가 '집필'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후의 논문 논리 전개는 바로 이러한 '주요전제'를 바탕으로 전개되니, 저로서는 이 부분이 의문이 들더군요.
달랑 '상장돈장'이라는 간지표기를 가지고 1930년도에 화랑세기 잔본이 완료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과감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주장대로 1930년에 작업이 끝나 제책되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1930년에 작업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러니 저로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고증의 설득력 약해서 전반적인 논리전개와 주장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더군요.
왜냐하면, 역사학에 있어 선후관계와 인과관계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데, 박남수씨의 논문에서는 그 부분을 너무 대충 넘겼기 때문입니다.

결론 : 박남수씨의 논문은 읽어봤지만, 잔본의 시기를 1930년이라고 비정한 전제가 불확실 하기 때문에, 여전히 '화랑세기는 소설이 아니라 필사본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덧. 맥브라이드의 논문도 구하긴 했는데, 그건 영어 논문.. ㅜㅜ 아놔. ㅜㅜ
덧2. 김태식 선생님의 논문도 구해보기는 했는데, 상당한 비약이 있어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0-;;;
Posted by 티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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